픽사의 픽업 아티스트가 공개한 노하우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인사이드 아웃> <코코>. 픽사 애니메이션은 왜 매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까요? 화려한 그래픽과 기술력 뒤에 숨겨진 진짜 비밀은 '스토리텔링'입니다. 2011년, 픽사의 전 스토리 픽업 아티스트 엠마 코트(Emma Coats)는 자신이 픽사에서 배운 스토리텔링 법칙 22가지를 트위터에 공개했어요.
이 22가지 법칙들은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소설, 시나리오, 드라마, 웹툰 등 '이야기' 전반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웹소설을 연재하는 작가도,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도,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도 픽사의 22법칙에서 배울 점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각 법칙을 하나씩 살펴보고, 실제 창작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자 (1~7법칙 해설)
1. 독자가 캐릭터를 좋아하는 건 성공 때문이 아니라 도전하는 과정 때문이다.
You admire a character for trying more than for their successes.
<토이스토리>의 우디가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앤디의 1등 장난감이어서가 아닙니다. 버즈에게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하고, 질투하고, 실수하지만 결국 친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 때문입니다. 독자는 완벽한 주인공보다 발버둥치는 주인공에게 더 깊이 공감합니다.
웹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회귀물이나 빙의물에서도 주인공이 치트키만 받고 쉽게 문제를 해결한다면 독자는 금방 질립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김독자가 사랑받는 건 그가 끊임없이 선택하고 책임지며 고통받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성공보다 실패와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해보세요.
2. 작가로서가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재미를 생각해라
You gotta keep in mind what’s interesting to you as an audience, not what’s fun to do as a writer. They can be very different.
많은 신인 작가들이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와 "독자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작가 본인은 흥미진진한 세계관 설정이 독자에게는 지루한 설명이 될 수도 있죠. 판타지 소설에서 마법 시스템을 30페이지에 걸쳐 설명하는 건 작가에게는 즐거워도 독자에게는 고통입니다.
픽사는 항상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니모를 찾아서>에서 바다 생태계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하기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감정에 집중했고요. 여러분의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가 정말 알고 싶어하는 건 무엇인지, 어떤 장면에서 페이지를 넘기고 싶어할지 끊임없이 질문하세요.
3. 주제는 결말까지 가봐야 정확히 안다. 이제 다시 써라
Trying for theme is important, but you won’t see what the story is actually about until you’re at the very end of it. Now rewrite.
처음 스토리를 기획할 때 생각했던 주제와 실제로 완성된 작품의 주제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쓰다 보면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웹소설은 연재하면서 쓰는 경우가 많아 이 법칙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1부가 끝나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세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뭐였지?"를 점검하고, 2부부터는 그 주제를 더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장편소설을 쓴다면 초고를 완성한 후 반드시 퇴고하면서 주제를 정리하세요.
4. 모든 이야기는 이 구조를 따른다.
"옛날에 ___가 있었다.
매일 ___했다.
어느 날 ___(어떤 일이 생겼다).
그래서 ___했다.
그래서 ___했다.
결국 ___했다."
Once upon a time there was ___. Every day, ___. One day ___. Because of that, ___. Because of that, ___. Until finally ___.
모든 픽사 영화가 이 틀을 따릅니다. 이 구조는 한 편의 작품 전체뿐 아니라 각 에피소드, 각 장에도 적용됩니다. 시나리오라면 각 신(scene)에도 이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예시] <토이스토리>
우디는 앤디의 방에서 리더였다.
→ 매일 장난감들과 평화롭게 지냈다.
→ 어느 날 버즈가 나타났다.
→ 그래서 우디는 질투했고 실수를 저질렀다.
→ 그래서 둘 다 위기에 빠졌고
→ 결국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웹소설은 이렇게 될 수 있겠죠.
일상(평범한 삶)
→ 사건(회귀/빙의/각성)
→ 선택(새로운 행동)
→ 결과(변화)
→ 연쇄반응(더 큰 변화)
→ 결말.
5. 단순화하고, 집중하고, 캐릭터를 합치고, 우회로를 건너뛰어라
Simplify. Focus. Combine characters. Hop over detours. You’ll feel like you’re losing valuable stuff but it sets you free.
처음 쓰는 작가일수록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합니다. 등장인물 20명, 서브플롯 10개, 복잡한 세계관. 결과는 이야기가 산만해집니다. 독자/관객이 무엇을 보고 느낄지, 어떤 이야기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 거죠.
픽사는 철저하게 단순화합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을 딱 5개로만 표현했습니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만약 20가지 감정을 다 넣었다면 영화는 실패했을 겁니다. 이렇게 꼭 필요한 캐릭터만 남기고, 본질적이지 않은 서브플롯은 잘라내세요. 더 적은 것이 핵심이기에, 더 강력할 거예요.
6. 캐릭터가 잘하고 편안해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상황을 던져라
What is your character good at, comfortable with? Throw the polar opposite at them. Challenge them. How do they deal?
라따뚜이의 레미는 요리를 사랑하는 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쥐는 주방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이 모순이 드라마를 만듭니다. 만약 레미가 인간이었다면 그냥 평범한 요리사 성장기가 됐을 겁니다.
이건 캐릭터 설계할 때 중요한 지점이에요. 검술 천재에게 마법 금지 상황을 던지고, 냉혈한 암살자에게 아이를 보호하라는 미션을 주고, 내성적인 주인공에게 리더 역할을 맡기세요. '나 혼자만 레벨업'에서 성진우가 처음엔 가장 약한 E급 헌터였다는 설정이 강력한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시나리오에서도 주인공의 약점과 상황의 요구를 정반대로 설정하면 자연스럽게 갈등이 만들어집니다.
7. 결말을 먼저 정하고 중간을 채워라. 진심이다
Come up with your ending before you figure out your middle. Seriously. Endings are hard, get yours working up front.
많은 작가들이 "일단 쓰면서 생각하지 뭐" 하고 시작합니다. 그러다 50화쯤 가면 방향을 잃고 휴재에 들어가거나 억지스러운 전개가 나옵니다.
픽사는 항상 결말을 먼저 정해요. <업(UP)>은 "칼이 낙원 폭포에 도착한다"는 결말이 먼저 정해졌고, 그 다음 "어떻게 도착하게 만들까?"를 고민했습니다.
어딜 향해갈지 확실하게 정해 써보세요. 웹소설을 연재한다면 최소한 1부의 결말은 미리 정해두세요. 이상적으로는 전체 결말까지. 결말을 알면 복선을 깔 수 있고, 불필요한 우회로를 피할 수 있습니다. 장편소설이나 시나리오라면 더더욱 필수입니다. 마지막 장면이 어떻게 끝날지 알면 처음부터 그 방향으로 이야기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작가의 태도와 창작 마인드 (8~14 법칙 해설)
8.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완성해라.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
Finish your story, let go even if it isn’t perfect. In an ideal world you have both, but move on. Do better next time.
완벽주의는 창작의 적입니다. 많은 신인 작가들이 1화를 열 번 고치다가 지쳐서 포기합니다. 80점짜리 완결작이 미완의 100점보다 백배 낫습니다.
연재, 집필을 시작했다면 일단 끝까지 써보세요. 중간에 "이거 망한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도 계속 쓰세요. 첫 작품은 연습입니다. 완결을 경험해봐야 다음 작품을 더 잘 쓸 수 있습니다.
9. 막혔을 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의 리스트를 만들어라
When you’re stuck, make a list of what WOULDN’T happen next. Lots of times the material to get you unstuck will show up.
다음 전개가 안 떠오를 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을 적어보세요. "주인공이 갑자기 죽는다", "히로인이 악당이 된다", "모든 게 꿈이었다" 같은 것들. 그러다 보면 의외로 쓸 만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옵니다. 역발상이 창의성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은 실제로 효과적입니다. "절대 안 될 것 같은" 아이디어를 10개쯤 적다 보면 그중 하나가 "어? 이건 조금만 손보면 괜찮을지도?"로 바뀝니다. 막혔을 때 백지를 보고 고민하지 말고 일단 손을 움직이세요. 쓰레기라도 써야 다음이 나옵니다.
10. 좋아하는 작품을 분해해라. 좋아하는 부분이 당신의 일부다
Pull apart the stories you like. What you like in them is a part of you; you’ve got to recognize it before you can use it.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 영화, 드라마를 10개 골라서 분석해보세요. 왜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는지, 왜 이 캐릭터가 매력적인지, 왜 이 반전이 충격적이었는지. 그게 여러분만의 강점을 찾는 방법입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을 좋아한다면 왜 좋아하는지 구체적으로 적어보세요. "주인공의 성장 곡선", "시스템 메시지의 간결함", "사냥 장면의 박진감" 같은 것들. 이게 여러분이 잘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반대로 싫어하는 작품도 분석하세요. "왜 이 소설은 재미없었지?"를 알면 같은 실수를 피할 수 있습니다.
11. 종이에 쓰면 고칠 수 있다. 머릿속에만 있으면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Putting it on paper lets you start fixing it. If it stays in your head, a perfect idea, you’ll never share it with anyone.
"나 진짜 기가 막힌 아이디어 있는데..." 하고 5년째 안 쓰는 사람들 많습니다. 머릿속 아이디어는 항상 완벽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쓰면 구멍이 보입니다. 그래야 고칠 수 있습니다. 써야 피드백을 받고, 피드백을 받아야 성장합니다.
웹소설이든 시나리오든 일단 1화를 써보세요. 노벨라 같은 집필 도구로 구조를 잡아도 좋고, 손글씨로 끄적여도 좋습니다. 형편없어도 괜찮습니다. 완벽한 머릿속 아이디어보다 형편없어도 종이 위의 초고가 백배 낫습니다. 쓰지 않으면 영원히 발전할 수 없어요.
12. 첫 번째로 떠오른 아이디어는 버려라.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도. 뻔한 건 치워라
Discount the 1st thing that comes to mind. And the 2nd, 3rd, 4th, 5th – get the obvious out of the way. Surprise yourself.
"회귀한 주인공이 과거 지식으로 돈 번다" → 너무 뻔합니다.
"빙의한 주인공이 원작 지식으로 살아남는다"→ 뻔합니다.
첫 번째 아이디어는 대부분 진부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도 똑같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아이디어까지 가야 조금 신선해집니다. 픽사는 항상 처음 떠오른 것을 버립니다. <코코>의 초기 아이디어는 "미국인 소년이 멕시코를 여행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뻔하죠? 여러 번 수정을 거쳐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가족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독자도 놀라지 않습니다.
13. 캐릭터에게 명확한 의견을 주어라. 수동적인 캐릭터는 독 자에게 독이다
Give your characters opinions. Passive/malleable might seem likable to you as you write, but it’s poison to the audience.
가장 흔한 실수 중 하나가 '주변 상황에 휩쓸리기만 하는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이 매번 "어떡하지...", "이게 맞나..." 하면서 결정을 미루면 독자는 답답해합니다. 캐릭터에게 명확한 가치관과 의견을 주세요. 틀려도 괜찮습니다. 나중에 성장하면서 바뀔 수 있으니까요.
'전지적 독자 시점'의 김독자는 명확한 신념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 신념이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여러분의 주인공도 "나는 이것만은 지킨다" 같은 명확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택의 순간마다 갈등이 생기고 드라마가 만들어집니다.
14. 왜 이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 내면에서 불타는 믿음이 뭔가?
Why must you tell THIS story? What’s the belief burning within you that your story feeds off of? That’s the heart of it.
조회수를 위해, 돈을 위해 쓰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 이야기만큼은 꼭 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어야 끝까지 쓸 수 있습니다.
픽사의 모든 작품에는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과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업>은 감독이 실제로 아버지를 잃은 경험에서 나왔고, <인사이드 아웃>은 딸의 사춘기를 지켜보며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요? 그게 핵심입니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여러분만의 진심이 담겨야 독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왜 이 장르를 선택했는지, 왜 이 주제를 다루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계속…
다음편에서는 나머지 법칙들을 해설하며 실전에 대한 부분을 나누어요!(금요일 업로드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