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좀 읽으시나요? 혹은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으시나요?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한국 판타지는 대체 어디서 시작된 걸까?"
"왜 한국 웹소설은 회귀물, 헌터물, 게임 판타지로 가득할까?"
네이버시리즈, 카카오페이지, 문피아 등에서 매일 수백 편의 판타지 소설이 연재되고, 수백만 명이 유료로 읽죠.
지금의 웹소설 중심 한국 판타지 시장은 수조 원 규모로 성장했고, 오늘은 30년 전 PC통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한국 판타지의 역사와 구조를 다섯 개의 핵심 작품으로 정리해볼게요.
1세대 (1990년대) - 한국적인 서사
(1) 《퇴마록》(1994) - K-오컬트의 바이블
1994년, PC통신 하이텔과 나우누리에 《퇴마록》이 연재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죠. 전화선으로 컴퓨터를 연결해 텍스트를 주고받던 PC통신 시대였죠.
이러한 시기에 《퇴마록》은 1990년대 한국 도시 배경으로, 종교, 신화적 요소를 판타지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귀신과 악령을 퇴치하는 이야기예요.
4인의 퇴마 주인공들은 이렇습니다.
박윤규(박신부): 깊은 신앙심으로 오라를 사용하는 리더
이현암: 몸이 좋지 않아 기계체조(무예)를 배우고, 모종의 이유로 해동밀교를 찾아간 대학생
장준후: 천부적인 영적 능력을 가진 청년. 해동밀교의 마지막 생존자.
현승희: 해동감결에 적혀있던 4대객 중 남방신인, 여성 캐릭터.
대강 보면 어떤 이야기인지 감이 오겠지만, 이 작품이 왜 의미가 있었을까요?
첫째, 한국을 배경으로 한 본격 판타지라는 것.
일반적으로 ‘판타지 = 중세 유럽’을 전제로 했던 시대에 서울, 부산, 제주 같은 현실 공간은 놀라운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성, 기사, 마법사, 드래곤 클리셰에서 벗어난 거죠. 《퇴마록》은 "한국에도 초자연적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셈이죠.
둘째, PC통신 문학이 돈이 된다는 걸 보여준 사례!
《퇴마록》은 PC통신(하이텔 등) 연재 후 1996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리즈는 14권 본편과 2권 외전으로 이어지며 누적 판매량 1,000만 부 이상을 기록하며 당시 한국 장르 문학 시장에서 드물었던 상업적 초기 성취를 이뤘죠.
셋째, 한국적인 세계관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
작품 전체가 기독교적 이미지, 불교적/주술적 상상력, 민간신앙적 분위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여 있어요. 이것은 당시까지 한국 현실 공간과 전통적 상상력을 판타지로 결합하는 방식이 드물었다는 점에서, 이후 작품들이 한국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세계관에 도입하는 데 가능성을 제시한 사례로 읽힐 수 있어요.
(2) 《드래곤 라자》(1998) - 세계관과 철학을 가진 판타지
그리고 또 1998년, 한국 판타지 중요한 작품,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이 등장합니다.
1997년 10월부터 1998년 4월까지, 단 6개월 만에 PC통신 하이텔에서 완결된 작품입니다. 이영도는 당시 대학생이었고, 이게 그의 첫 장편소설이었습니다.
《드래곤 라자》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시골 영지 헬턴트의 견습 초장(촌장) 후치 네드발이 드래곤에게 인질로 잡힌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몸값 10만 셀을 마련하러 수도로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왜 전설이 되었을까요?
첫째, 탄탄한 세계관.
톨킨의 《반지의 제왕》처럼, 《드래곤 라자》는 완벽하게 설계된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왕국, 제국, 드래곤의 역사, 마법 체계, 종족 간 관계. 모든 것이 그 안에서의 논리로 잘 연결되어 있어요.
둘째, 철학적 깊이.
《드래곤 라자》는 단순한 모험 이야기가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다른 관계 속에서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인간 정체성과 존재의 다면성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선과 악,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 등을 성찰하게 했습니다.
이 철학적 깊이 때문에 《드래곤 라자》는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작가 이영도씨(33)의 판타지소설 ‘드래곤 라자’ 종반부 여섯 쪽 분량이 실린 태성출판사 간 고교 문학교과서가 최근 한국 검정교과서협회의 심사를 통과했다고 이 출판사측이 24일 밝혔다. 이 교과서는 이번 3월 학기부터 쓰인다.” (출처. 동아일보)
셋째, 엄청난 상업적 성공.
《드래곤 라자》는 발표 이후 국내외에서 매우 큰 판매 성과를 기록했어요. 한국에서만 130만 부, 일본/대만까지 합쳐, 전 세계 누적 판매량이 약 210만 부 정도가 팔렸습니다.
이 성공으로 "판타지 소설은 돈이 된다"는 인식이 확고해졌고, 수많은 작가가 PC통신에서 판타지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3) 《세월의 돌》(1999)
전민희의 《세월의 돌》이 등장합니다. 총 3개 시리즈 중 ‘아룬드 연대기’ 시리즈 첫 작품이죠. 가문의 보물을 두고 벌어진 전쟁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검 한 자루에 의지해 대륙을 방랑하는 소년 보리스 진네만의 성장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보리스의 검 '윈터러(겨울을 지새는 자)'는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주인공의 상징입니다.
전민희 작가는 온라인 RPG 게임 <테일즈위버> 원작자이기도 하며, ‘룬의 아이들’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어요. ‘테일즈 위버’의 스토리 원형이 되는 소설인 거죠.
1990년대 한국 판타지의 특징
1990년대 한국 판타지와 지금과 다른 결을 가진 것 같죠? 지금과 다른 구조적, 문화적 배경을 살펴봅시다.
엘리트적 성향이 있습니다.
→ 1990년대 장르 문학은, 이후 웹소설이나 대여점 시대의 판타지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문학적 요소와 주제 의식을 많이 담았다는 평가가 존재하죠.
위에 예시 작품들만 봐도 세계관의 정교함, 철학적인 질문, 서사의 밀도가 함께 있는 작품들이죠.
왜일까요?
PC통신을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죠. 컴퓨터가 있어야 하고, 전화 요금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텍스트를 즐겨 읽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독자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판타지를 읽는 사람들은 이미 톨킨, D&D(Dungeons & Dragons), 일부 게임들이 한국에 수입되며 JRPG(일본 롤플레잉 게임), 일본 판타지 소설, 애니메이션을 즐기던 대중문화 애호가들이었습니다. 초기 한국 판타지가 이런 게임 구조, 상상력의 맥락에서 영향을 받은 거죠.
전반적으로 1990년대는 단순 소비가 아니라, 장르에 대한 애착과 탐구 정신이 깊었던 거죠.
30년 전 PC통신에서 시작된 한국 판타지는 이제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톨킨이 유럽의 신화를 바탕으로 《반지의 제왕》을 만들었듯, 한국 작가들은 한국의 경험과 상상력으로 새로운 판타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판타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독자에게 현실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고, 약자의 성장을 응원하게 만들고, 명확한 보상으로 만족감을 줍니다.
형식은 바뀌어도 본질은 같은 거죠.
그리고 그 본질을 이해하는 작가가, 결국 다음 시대의 《드래곤 라자》, 《전지적 독자 시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예요.
노벨라 같은 이야기 창작을 위한 집필 도구로 효율을 높이되, 깊이 있는 세계관을 만들어보세요. 이미 1000만뷰 웹소설 작가님 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님들이 노벨라를 통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어요.
그럼 오늘도 작가님의 창작을 응원할게요. 한국 판타지 30년의 역사를 이해하는 작가가, 다음 30년을 만들어갈 테니까요.
to be continued…
대여점 시대와 웹소설 시대에 대한 나머지 부분은 2편에서 다룹니다.